숏 버스

2011/06/26 19:08


숏버스, 조너선 무니

한 남자가 개조한 숏버스를 타고 미국 전역을 여행하는 이야기이다.

보충설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 남자에게는 읽기 장애가 있었다. 12살까지 글을 읽지 못했고 학교에서는 골칫덩어리였다. 숏버스는 특수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셔틀버스이다. 남자는 읽기장애를 극복하고 브라운 대학을 졸업하고 강연을 다닌다. 어느 순간 숏버스 여행을 결심한다.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 까지 책 속의 남자도 갈팡질팡하였고, 나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 책은 장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처럼 보였다. 장애들 말이다. 남자는 극복한.

이 책에는 각종 (소위 말하는) 장애가 나온다. 성동일성 장애,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발달 장애, 읽기 장애, 청각 장애, 아스퍼거 장애. 남자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이러한 장애를 가진 사람을 만난다. 이 책이 문제 삼고있는 바는 꽤 명확하다. 장애를 장애로 대하고, 극복해야할 그 무엇인가로 대하는 그런 사람들의 자세. 정상이라는 기준은 무엇인지, 이러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지역 사회에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루는 데에 장애를 극복한 주인공의 배경은, 책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해 줄 수 있는 요소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너무나 역설적이다. 그러니까, 어쨌든 사람이라면 제도권 교육에서 인정받는 성취를 이루어야 한다는 결론이 되기가 너무 쉽기 때문이다. 나는 읽으면서 이렇게 제도권이 인정하는 성취를 이룬 사람의 말이 아니라면, 누가 이 목소리에 귀를 귀울여 줄까 하는 생각때문에 사실 책을 대충 읽었다. (게다가 내가 알고싶었던 건 읽기 장애가 어떻게 극복되는가 였다고! 그게 궁금했다고!)

오랫동안 나는 모든 문제가 사라져 우리가 괴로운 경험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다. 존이, 내가, 켈리가 그럴 수 있기를 바랐다. 지난날의 상처를 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그럴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가 단순히 상처의 총합, 상처에 대한 반응의 총합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자아가 있음을 믿고 싶었다. 우리의 어떤 것이 초월적인 것이기를, 우리가 단순히 뇌나 전자의 작용에 의한 존재가 아니기를, 손상과 결함의 집합체가 아니기를 바랐다. 하지만 존은 병원을 나오면서 달라진 것 같았다. 그는 고장난 머리와 함께 달라진 삶과 미래를 갖고 병실을 나셨다.
특히 나는 우리가 '뇌나 전자의 작용에 의한 존재'이며 '우리의 어떤 것이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고 방식과 너무 친했기 때문에. 때로는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는 가능한 한 이번 여행을 길게 늘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내가 더 이상 지평선을 좇지 않는다면, 고난을 극복한 영웅이 아니라면, 그렇나면 내가 누구인지 아직 그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가면서 조금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비록 저자가 그러한 성취를 이루긴 했지만, 그의 자아에서 성취가 차지하는 부분과, 장애가 차지하는 부분은 통합되지 않고 끊임없이 싸우고 있었고 대체로 여전히 장애가 차지하는 부분은 부정되고 있었다. 극복에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진다면, 그만큼 장애는 결국, 부정되어야 하는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마침내 아버지가 수화기 너머에서 말했다. "알고 있지?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네, 좋은 책을 쓸 수 있으면 좋겠네요. 사람들이 좋아했으면 해요." 나는 그런 것들이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하는 일들이라고 생각했다. 브라운 대학교, 책 저술, 성취와 같은 것들.
"그게 아니다.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구나.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고 한 거다."
(중략)
나는 멀리 바다쪽에 서들려오는 뱃고동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신에 관해 그렇게나 잘못 생각했던 것인가? 지금까지 나는 내 가치가 성취에 있다고 믿어 왔다. 숏버스 여행이야기의 핵심은 내가 장애를 극복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지평선을 좇아 이번 여행을 시작했는데 이제 그 지평선은 사라져버리고 나는 버스에 혼자 남겨져 있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을 때 비로소 사람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평범한 결론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몹시 힘든 결론일 것이다.

별로 감동적이거나 큰 깨달음은 없었다. 장애를 가진 존재가 지역공동체에 있어도 공동체는 그를 포용할 수 있어야한다는 얘기였고 그들은 다양성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거나, 여튼 그외에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이야기는 와닿지 않았다. 미국 지역사회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그러한 존재에 대한 관용도 없어졌다고 저자는 이야기하지만 딱히 그래보이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우리 나라도 동네 미친년, 동네 바보가 마을 마다 한 명씩은 있었고 사람들이 그러한 존재를 그냥 받아들였었지만 근대화 이후에 그러한 존재가 없어졌다고 하는 것과 같다.) 저자 스스로도 고백한다. 축구선수이던 시절 왜소하고 다소 여성스러웠던 다른 학생을 게이라고 놀리고 괴롭혔다고. 뭔가 다른 것에 대한 배척은 거의 본능적이라고 보는 게 맞다. 다만 교육과 상식으로 완화될 뿐이다.

저 위에 언급한 수많은 장애들. 진단명의 기준에 대해서도 저자가 언급한다. 그리고 사람을 그렇게 진단하고, 나누어서, '장애'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암암리에 문제삼고 있다. (그러한 장애로 진단 내리는 기준이라는 것이 시대에 따라 왔다갔다하고, 현재도 모호한 기준이 많다는 점을 들어) 이러한 문제점은 내부적으로도 언제나 논의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우울 장애 등은 '과거에는 질병이 아니었던 것을 괜히 질병으로 규정해서 사람들을 병자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끊이 없이 듣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이 (심지어는) 약물로 상당부분 완화되기도 해서 우리가 단순히 뇌나 전자의 작용에 의한 존재가 아니며 더 초월적인 무엇인가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좌절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읽으면서 그럼 제도권 교육은 도대체 어떠해야 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내려 놓을 수 없었다. 분명히 학교에는 그런 존재들이 있다. 제도적으로 규범화된 배움에 취약한 존재들. (이유는 다양하다.) 제도권 교육은 이러한 존재를 끊임없이 못살게 굴고, 좌절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공간일 뿐인지. 다른 교육의 길이 있는 것인지 해답을 알고싶었지만 그에 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장애아동 통합교육을 이야기 할 때 많이 거론 될 책으로 보인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하는 문제와 연결 된다. 사칙연산을 배워야 하는가, 혹은 자신과는 조금 다른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가. 후자 또한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고매하신 분들께서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학교에 있는 중생들까지 그걸 체화하고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할 수 없다. 책에서 이야기 하듯 장애도 정상의 범주에 들어간다. 당연히, 생물에겐 그 정도의 변산이 있을 수 있다. 있는 쪽이 정상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장애아동을 놀리고 괴롭히고 저능하다고 욕하는 개체도, 당연히, 정상의 범주에 들어간다. 안타깝지만 그런 개체가 없는 쪽이 비정상이다. 학교는 정말로 사회의 축소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정말 저열한 나의 일부분인데. 나는 이런 식으로 그런 다름을 가진 이들이 특별하게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서 그럼 나는? 제도권 교육을 무리없이 이수한 나는? 주변에 특별한 영감이 되지 못하는 그저 평범한 나의 가치는 뭐냐는, 정말이지 저열하기 짝이없는 열폭을 했다. 다르다는 것은 특별한 것이다. 이 책은 다르다는 것의 긍정적인 가치를 부각시키기 위해 거기에 많은 특별함을 부여하고 있다. 왜 장애 형제자매가 있는데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엄마가 그 아이를 품에 안고 **이는 정말 우리 가족에 큰 선물이자 축복이라고 얘기할 때의 나머지 형제자매가 된 기분이라는 거다. 엄마 그럼 나는? 나도 안다. 이게 저열하다는 거. 내가 위에서 시큰둥 했던 것은 어느정도 이런 감정이 있기 때문이고 따라서 어느정도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밝혀둔다.

마지막으로 장애라는 말에 얽힌 에피소드를 하나 이야기 하겠다.

일전에 친구가 요새 성질을 엄청 냈다가 기분 좋아했다가... 조울증이라도 걸린 것 같다고, 성격 장애인 것 같다고 농담조로 얘기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건 성격 장애는 아냐."
라고 대답했고
친구는
"그럼 뭐야?"
라고 되물었다.

"그냥 장애야"

그 말에 나와 내친구는 빵터지고 말았다.
보충 설명을 하자면 조울증 (양극성장애)는 기분 장애에 속하는데, 성격 장애는 또 따로 있다. 배운지 오래 돼서 기억이 잘... 종류가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기분 장애라는 말이 생각나지 않았던 나는 그만...

제일 처음에 나열한 진단명에서 상당수의 장애라는 말은 영어로 disorder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번역하면서 장애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으아니 의사양반 무슨소리요. 내가 장애인이라니! 이런 시추에이션이 되기 더 쉽다. 저 위의 장애인이란 단어는 딱히 장애인을 비하하려는 의도로 쓴 건 아니다. 그런데 어감이 미묘한 것만은 사실이다. 이게 아마 내가, 우리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장애에대한 인식, 편견의 소산일 것이고, 사라지려면 오래 걸릴 것이다.

삼천년만에 책 한 권 읽어서 자랑하려고 감상썼다.
2011/06/26 19:08 2011/06/26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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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없으시죠

2010/04/18 18:48


네 저도 재미없습니다.
블로그...
고3때 부터 재미있게 해왔는데 요즘은 근성이 떨어져서
이때까지도 많이 루즈했지만 앞으로도 계속 좀 루즈하게 운영할 것 같습니다.
그간 읽은 책 얘기나 좀 정리하겠습니다.

귀찮아서 표지 생략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
제가 한동안 거의 활자를 읽지 못하고 있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겨우 읽을 수 있었던 책. 이것만은 계속 읽고 싶어서 연장을 해가면서 버텼습니다. 막 통일된 동독과 서독의 경계를 다루고 있고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대해서 소설이 할 수 있는 만큼 잘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 사는 사람들을 쭉 돌아가면서 보여주고 있고 조각 이야기들이 만나거나 헤어지거나 하는 구성입니다. 재미있었던 부분은 서독 남자친구가 동독 여자친구네 집들이를 해 주러 가는 장면. 거기서 최신 변기 때벗기는 세제ㄱ-;를 사서 들고 올라가면서 속으로 ㅅㅂ이럴때는 꽃이나 와인이나 이딴 폼 나는걸 들고가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자기 기준으로 멋있는 걸 해주는 게 아니라 여자친구한테 필요한 걸 해주는게 제일 멋있는 거 같습니다. 좀... 주제랑은 상관없는 얘기였졉...
좋은 책이었습니다.

모두 다 예쁜 말들, 평원의 도시들, 국경을 넘어
코맥 매카시 국경 3부작 입니다. 좋았습니다.
말! 말! 목장! 말!
말이 나와서 좋은 것도... 물론 그렇지만...
멕시코와 미국 국경지대를 넘나들면서 말타고 모험하는 내용이지만 신나지는 않습니다. 악당을 쳐부수는 내용도 아니고, 딱히 악당이 없달까. 그래도 세상 살기는 얼마나 험하고 힘드니까요. 근데 모두다 예쁜 말들은 표지도 제목도 다 사기야. 그것만 보면 착한 청소년이 회전목마장에서 알바하는 내용같잖아. 현실은 청소년이 말 몰고 총질하는 내용입니다. 같은 작가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양로 노인 인권 영화인줄 알고 봤다가 총질하는 내용이라 크게 낚였다던 제 친구가 생각 나는 군요.

존 : 귀엽고 천사같은 금발일 것 같아... 말을 이해하는 카우보이... 그리고 사랑을 할 줄 아는 청소년... 이 쇄키 너 종마를 타고 주인 아가씨 앞에서 그렇게 달리지 마 이 쇄키 속 다보여... 이 장면에서는 좀 뿜었습니다.
빌리 : 츤데레 빛바랜 금발일것 같아... 사랑을 잘 안하는 청소년... 존을 또라이라고 욕하지만 너에게도 약간 또라이 피가 흐르고 있찌...

전 아무래도 세계가 좀 하드한 소설을 좋아하나 봅니다. 아마 김훈도 그래서 그런게 아닐까 싶은데. 여기서도 직접 몸으로 부딪혀 가면서 험한 세상을 살아나가는 내용이라서 좋았습니다. 문장도 간결하고 서정적이고. 원서를 오디오 북으로 듣고싶다고 생각한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
눈물ㅠㅠㅠㅠ
그리고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 사람을 강하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랑했고 사랑받았던 기억이라는 박완서의 추천사가 으... 핵심... 역시... 작가...
마리암은 부잣집의 인정받지 못하는 딸, 말하자면 사생아로 태어나, 그만 팔려가 듯 시집을 가게 되고 시집을 간 카불에서의 삶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맞물려 크게 힘들어 집니다. 그 와중에 옆집에 살던 여자애가 이 집의 둘째 부인이 되었고 질투로 시작했지만 두 사람은 한 집에서 힘든 시기를 견디며 연대를 키워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전쟁+해당 문화권의 뿌리깊은 여성에 대한 차별 두 가지를 모두 다루어 내고 있는 소설입니다.  부시가 전쟁을 일으킨게 해방이라서 좋다는 거야 뭐야에 대한 해답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똑같은 전쟁일 뿐이라고. 네.

서사 자체가 굉장히 강력하고 또 현실과 튼튼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힘들고 비참한 현실이기 때문에 일단 자체로도 강력하지만 거기에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은 빼면서 서사를 만들어서 좋은 소설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공무도하, 김훈
엉 구랭. 그냥 김훈 책. 김훈의 폭풍간지체는 좋아하지만 이 책은 뭐 그저 그런 정도

구해줘, 기욤 뮈소
엉 구랭2. 책장은 빨리 넘어가고 대중적으로도 나쁘지 않은 소설인데 아주 괜찮냐고 하면 그닥... 약간... 좀... 전 사랑에는 관대합니다. 그게 환상이든 아니든 관대한데... 선남 선녀가 그렇게 사랑을 했다고 하면 좋긴한데.. 역시.. 아... 쌍쌍커플엔딩만은 좀.....


위저드 베이커리.
최근 창비 청소년 도서 라인을 어쩌다 좀 읽어보게 되었는데 재미있는 듯.
작가의 말이 재미있었는데 뭐 힘든 일을 겪고 성장하는 성장소설의 도식을 무의식적으로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어쩌고 하는 말이었는데 배제한다는게 무의식적으로 가능한 일임? 근데 의도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그렇게 한꺼풀 자라는게 아니라 오로지 견디기만 하는 것도 힘든 때가 있잖아.
청소년이 읽기에도 재미있고 어른이 읽기에도 재미있는듯
왜 내가 학교 다닐 땐 이런 책이 안나왔단 말인가!

완득이
창비 청소년 라인2. 재미있었음. 한 번 잡았는데 그만 놓지 못하고 끝까지 읽었음. 학생의 추천도 있고 해서. 근데  누가 여기 나오는 똥주가 졸라 나쁜놈인데 외국인 노동자 도와주고 있는게 조낸 반전이었다고 했는데 아니! 첫장부터 느껴지는 똥주의 츤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단 말인가! 사랑에 내리사랑 치사랑 츤사랑이 있으니 그중의 으뜸은 츤사랑 인것을!
2010/04/18 18:48 2010/04/1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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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뭐랄까, 박민규가, 연애 소설이라니. 다들 남자고 여자고 연애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라고 하면 뭐, 못할 것도 없겠지만 편견이란 건 무서워서 금성과 화성에서 온 외계인이 냉장고에 들어앉아 카스테라를 먹는 내용 아닌가 잠시 의심했다. 그런데 빼도 박도 못 하게 제일 첫머리에 아내에게 헌사까지 박혀있는,

연애

소설이다. 눈도 오고 엘피판도 있고 비틀즈도 있고, 나도 있고 그녀도 있다. 연애를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아니, 과하다.

소설 첫부분을 읽었을 때 : 박민규가 연애소설이라니... (차별하는건 아니지만)
소설을 중간쯤 까지 읽었을 때 : 그래! 사랑이야! 사랑을 하는거야 크허엏어헝허엏엏
소설을 끝까지 읽었을 때 : 아 시발 꿈(미리니름이 될 수 있어서 가려놓습니다. 드래그 하면 보입니다.)

여태까지 박민규의 주적(...)은 자본주의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별로 변함이 없는데 어떻습니까? 당신의 연애란? 첫눈입니까? 아니면 자본주의입니까?  자본주의 세계에서 첫눈처럼 연애하기를 바라거나 혹은 또 첫눈같은 연애에 자본주의의 룰을 들이대거나 혹은 그걸 욕하거나 첫눈을 밟으며 티오피든 스타벅스 커피든 들고 걷든 뭐 대강 그 어느 사이 쯤에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조금 옛날로 돌아가서 조금 편하게 첫눈을 소환하고 있다. 가진 것은 신수 훤한 얼굴 하나인 남자 주인공과 너무 못생겨서 다들 헉 한다는 여자 주인공이 둘이서 연애를 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이런 구도. 끊임 없는 열등감, 가진것 없음, 그 다음에 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조금이라도 공감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좋아한다. 그렇게까지 못생긴 이라는 설정이 다소 작위적이고 와닿지 않더라도. 그래 그렇게 연애를 하면서 결국엔 골목길 사이로 HOF아니고 HOPE인 맥줏집 간판이 깜빡거리는 세계를 차분히 지켜본 내용이다. 연애를 하더라도 결국엔 나나, 세상을 더 많이 보게 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세상은 사실 21세기와 별로 다르지 않은 세상이고.

그런데 그 쩜쩜쩜이 너무 무겁다. 소설은 제대로 된 문장으로 이루어 져 있다기 보다는 끊임없이... 망설이고... 말을 끌고... 부연한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싶을 정도로. 인터넷 화면에서는 픽셀 하나일지 모르지만 활자화된 종위 위해서 그 쩜이 너무 크고 무겁다. 내용 자체는 대학~사회초년생의 감수성 예민한 푸념정도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쩜쩜쩜이 더 그렇게 만든다.

결말이 하여간 좀 망했다. 하지만 나라도 답이 없다. 순간 삼류 드라마로 책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예전 드라마 시티 처럼... 어딘가 오그라드는... 박민규는 좋아하는데 객관적으로 이 책을 변호하기는 힘들다. 바꿔 말해서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엉 그게 좀 싶긴한데 어쨌든 난 박민규가 좋다는 거다. 이번에 이상문학상 탔다. 다들 많이 읽어 달라.


세계의 끝 여자 친구

하여간 제목은 엄청 간지나... 단편집이다. 여담인데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란 구절이 꽤 마음에 들었던 듯. 전에 이 제목의 장편을 썼는데도 같은 제목의 단편이 이 단편집에 실려있다. 글쎄 주된 테마는 이해...였던 것 같다. 이 책은 끊임없이 이해와 오해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이 둘 사이에는 삼해 정도의 차이가 있고, 점하나 정도의 차이가 있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여성화자가 다소 늘어났다고 느껴졌다. 전작들에서 느닷없이 이별을 통고했던 그녀들의 목소리를 좀 더 들을 수 있었다.
돌아가는 길은 너무나 멀고도 힘든데 정작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정말 거기가 맞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곧 나는 내가 기타라고 생각했던 악기는 기타가 아니라 우드라는 중동 지방의 민속악기라는 사실을, 눈앞이 흐려진 것은 느닷없는 눈물 때문만이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떨어지기 시작한 겨울비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제 더이상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한꺼번에 깨달았다. 나는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이혼하자고 말했다.

  내 애기를, 부주의하게 백합을 버린 일 때문에 이혼하자는 말로 들은 남편은 그때만큼 당황한 목소리로 자신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며, 나없이는 더이상 살아갈 의미를 알 수 없으며, 내가 원하는 대로 좀더 사려깊은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나는 말했다. 이혼하자고. 이혼해달라고. 제발 이혼해달라고. 남편은 당황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자신은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나 없이는 더이상 살아갈 의미를 알 수 없다고, 내가 원하는 대로 좀더 사려깊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시는 백합을 버리지 않겠다고.

시를 다 읽고 나더니 그녀는 내게 노스트라다무스의 그 시 때문에 자신은 나와 결혼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건 사실상 지구의 해수면 상승 때문에 우리가 헤어질 수 박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였다. 그게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때문이건 투발루를 서서히 잠식해들어가는 해수면 상승 때문이건 그런 초자연적인 이유때문에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고받은 남자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란 당혹감, 비참함, 분노, 적대감 등일 것이다

종종 여자친구에게 느닷없이 이별을 통보 받은 창작 계통에 종사하는 남자친구 이야기가 몇 번 겹쳐서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층위가 좀 다양해 졌다. 그래 솔직히 내가 소설가도 아니고, 남자친구도 아닌 남편인 다음에야. 이혼하자는 말에 '내가 더 잘할게' 외에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참고로 소설가는 끊임 없이 이해하고 소통려고 드는 족속이다. 그리고 더 여담인데, 예전에 수업에서 읽었던 프린트물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이면지 활용하다가 다시 읽었다. 어쩐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고서적 이면을 뒤지는 기분이었는데 하여간 거기서 소설을 쓸 수록 그는 소통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갔다. 에 밑줄이 쳐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자가 뿔났다 코너를 보는 것도 같은데. '내가 더 잘할게'라고 말하는 놈은 그럼 나쁜 놈이냐하면 꼭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선생님. 그 학생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선생님을 사랑했을 거예요. 선생님과 함게 보낸 시간이 행복했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태어나서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난 것만은 행운이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사랑은 어떤 순간에도 미워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선생님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았을 테니 까요.

함부로 사랑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 일인지. 책에 나온 가장 거대한 오해의 이 순간은 어찌되었건 위로의 맥락에서 이루어 지고 있다. 이부분이 문제인 것이다. 대개의 경우 우리는 이해를 빙자한 오해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선언이 중2의 선언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우리는 오해의 편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의외로 소설들은 거기에서 절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소설을 쓰지 않았을 테니까. 어떻게 해서 여기에 왔는가. 혹은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세상의 끝에서는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책이 말한다. 그 세상의 끝이라는 것이 라틴 아메리카가 아니라 호수 공원 건너편이니까. 나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80년 동안 노력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세상의 끝에서, 전해진 편지를 받아든 장면에서 나는 잠시 고민했다. 과연 이것을 이루어졌다고 말해야 하는지. 언젠가, 어디에선가는 반드시 하고자 했던 말이 전해진다는 선언은 맞는 말일 수는 있지만 가치가 없는 말일 수도 있다. 그냥 시공간 좌표를 넓게 잡으면 당연히 확률이 올라가는 기만을 부린 것은 아닌가 하고. 당연히 신뢰구간을 넓게 잡으면 신뢰도는 올라간다ㄱ-;; 대한민국 안에 범인이 있다는 말은 맞는 말일 수는 있지만 서울시 무슨구 무슨동 무슨빌라에 범인이 있다는 틀린 정보보다 의미 없는 말이다. 그런 의미해서 전해진다, 혹은 이해한다는 말의 의미가 요즘 어렵다. 어릴 때는 가치관이나 기만같은, 좀 더 어려운 단어를 어려워했던 것 같은데.

특히 요즘들어 이 단어를 어려워 하게 된 계기는 대통령이 '참 좋은 정책인데 국민 여러분이 이해만 해주면...'운운 했던 일과 <눈길>에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나'의 마음이 어떠 할지 생각하면서 어머니를 이해하는 내용으로 글을 써보자.'라고 했던 국어교과서의 문제이다. 첫번째의 이해는 정책이 애초에 잘못 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 좀 이상하다. 이해는 그런 데 쓰는 말이 아닌 것 같다. 납득 내지는 동의(....)가 화자가 의도한 말인것 같다. 그렇지만 이해하더라도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두번째 이해는 좀 미묘한데... 하여간 뭔가 아닌 것 같다. '배려'라는 말도 간혹 그런 경우가 있는데 상호동등한 입장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여유있는 사람이 부족한 사람에게 한다는 뉘앙스가 좀 있어서 저 이해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해는 양해와도 용인과도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이 말은 성립하니까 이해는 또 사랑과도 다르다. 그런데 정확히 뭐가 다른 것인지 잘 모르겠다. [-도의적] [+정의적] 이렇게 정리를 해봄직도 하건마는...

기타 읽은 책
문학터치 2.0
책은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 인터뷰&관찰일기(...) 같은 글인데 작가가 쓴 글 보다도 작가에 대한 글이... 사실 더 재미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책에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가 왜 기린인지에 대한 대답도 들을 수 있었고 어둠과 고독이 따뜻하게 느껴졌다는 김연수 파트에선 킁킁 범프 스멜-寂しさを知った時は 温もりに気付けるんだ-을 느끼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다. 근데 말이지...
2.0에 사춘기체에... 설마설마 하면서 봤는데 앞표지에 발칙한 어쩌고 수사가 아... 망했어요.
요새들어 잘나가는 삼종세트 (2.0+사춘기체+이시대의 발칙한~)을 한데 뭉쳐 놓으니 아... 참 안타까웠다. 뭔가 젊으려고 잘 나가려고 하는데 너무 과해서 부끄러웠다.
2010/02/23 22:08 2010/02/23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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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천 년 후에 만들어진 영화는 사마천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고 사마천의 이야기 또한 2천 년 후에 다가온 현실에 범접하지 못한다. 그것만이 진실이고 사실이다.
학문도 예술도, 그들이 가진 무력함을 깨달을 때 비로소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사마천이 가져다 준 감동의 근원은 최대한 사실과 맞닿으려는 겸손함에 있을 것이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간단하지만 그 사실을 가슴으로 깨닫는 데에는 지난 2천 년 동안 사마천을 따를 자가 없었다.

-「소슬한 바람」, 아사다 지로 단편집 『월하의 연인』중
사마천 사기의 핍진함에대해서 다른 누군가도 이런 얘기를 했던 것 같은 기분이...
그리고 이건 사실 현실에 대해서 쓴 소설일 뿐이라는 점이, 아이러니컬 합니다. 최근 소설을 소설대로 안 읽고 소설에 나오는 소설에 관한 언급에만 신경써서 읽고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사실은 제가 소설이 뭔지 잘 모르겠어서 그렇습니다.

별 재미도 없는 기사를 읽는다. 시간이 남아도니 장편 소설이라도 읽으면 되겠지만, 그럴 의욕이 일어나지 않았다. 책을 읽고 감동하면 괜히 현실에 허무함만 느낀다.
-『라라피포』, 오쿠다 히데오
따, 딱히 일본 소설만 읽고 있는 것은 아니라구!
이건 사실 요즘에 읽은 것은 아니고 예전에 저희 남매 사이에서 잠깐 바람이 불었던 오쿠다 히데오입니다. 집에 어쩌다 보니 공중 그네 책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미 소설인 주제에 소설에 관해서 그렇게 이야기 하다니! 사실 이소설은 전혀 숭고하지 않은 이야기로 저 대사를 한 여자는 모두가 쉽게보는 뚱뚱한 몸매로 남자를 헌팅해서 집에 꼬셔온 다음 그걸로 자가 촬영 에로비디오를 만들어 팔고 부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 시리즈는 뚱땡이와 어쩌구 시리즈로 일부 마니아 층에서 대히트.  여자의 본업은 타이피스트로 그녀가 타자치는 소설을 어떤 에로소설가가 구술한 @#$@씨는 !@#!@부인의 !@#!@$에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 그 에로소설가는 거리에서 원조교제 여자아이를 낚아서 어떻게 하면 @!#$@#해볼까 하는 것만 고민하고 있고, 이런식으로 등장인물들이 조금씩 조금씩 얽혀있는 총체적인 난국입니다. 비속합니다. 본격 모두가 비속해지는 세계. 그런 세계에서도,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쓰고 있는 소설에서도 소설이란 뭔가 감동을 주고, 그래서 현실보다 한걸음 더 숭고한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것이라는 언급이 재미있었습니다.

소설에서 작중인물이 그렇게 소설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니까 왠지, 이건 소설이 아니고 진짜 이야기야 하는 제스추어를 취하는 것 같아서 신기합니다. (그치만 소설가가 소설을 쓰다가 여행을 떠나서... 이런식으로 소설안에 소설이 등장하는 것은 좀... 이상하게 싫습니다. 물론 날로 먹은 것은 아니겠지만요.) 이상하게 사람들은 소설이라는 허구의 이야기에서 리얼리티를 추구합니다. 심지어 모두 개뻥임이 분명한 판타지 소설에서도요. 드래곤 라자는 잘 읽던 사람도 투명 드래곤에 가서는 이게 뭐얔!! 하게 됩니다. 기본적인 서사와 함께 기본적인 리얼리티를 갖추고 있는 쪽이... 저와 같은 평범한 독자에게는 어필합니다. 최근 한국 소설이 많이 독자에게 외면 당하고 있다고 하는데 돌이켜보면 서사의 파탄 외에도 저런 정도의 아주 사소한 예의, 리얼함의 미덕을 잘 느낄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양식있는 독자라면 이거 진짜야? 진짜야? 라고 따져 들어서는 안 되지만 읽는 동안에 끊임없이 이것은 그냥 소설일 뿐이라는 것을 의식해야한다면 왜 그런 노동을 하겠어요. 단편소설에는 나름의 미학이 있겠지만 단편소설에서 유독 그 쪼, 소설쪼라는 것이 느껴질때면 전 좀 괴롭습니다.

말이라는 것은 허약한 것이죠. 내가 무슨 말을 하거나 칼럼을 써서 자기 의견을 주장했다고 칩시다. 아주 고귀하고 고매한 진리를 말했다고 칩시다. 나의 생각과 정 반대로 얘기를 해도 휼륭한 말이 됩니다. 그 반대로 이야기해도 또한 말이 성립이 되고 훌륭한 담론이 되고 멀쩡한 틀이 되는 것이에요. 그럼 나의 말은 무엇인가. 나의 주장은. 그것은 남의 언어에 의해서 부정당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 이 허약한 것이야 말로 언어의 힘인 것입니다.

말은 세계를 개조할 수가 있습니다. 무기도 세계를 개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무기가 세계를 개조하는 것에 비하면, 말이 세계를 개조한다는 것은 매우 허약하고, 매우 멀고 아득해서 믿을 수가 없는 것 처럼 들립니다. (...) 그 까닭은 제가 말씀드렸듯이 언어의 본질이 허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허약함 안에 소통의 힘이 내장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말이 세계를 개조하리라는 꿈을 버릴 수 없는 것이죠.
-『바다의 기별』, 김훈
제가 말의 힘을 믿지 못한다고 수차례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렇네요. 그렇지만 말의 의미가 고정되어 굳어있다면 그것은 교조에 불과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말이란 것은 원래 그러한 것이니까, 다섯 번 오해하는 동안 겨우 두 번 이해하더라도 음, 그럭저럭, 괜찮은 타율이야라고 오히려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궁금했습니다. 이전 시대에 글을 썼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말이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그 글을 썼던 것일까요? 어느 정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그걸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말은 되냐/안 되냐  -당위나 가능의 세계에 있었고, 대개는 안 된다의 세계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서부터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내가 그러고 싶은가/아닌가를 좀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부터는 저의 책임하에 말을 할 수 있는 세계니까요.

기타 읽었던 구절중에 메모
그 숲은 여러 가지 면에서 지옥이었다. 물론 인간에게도 지옥이지만 나무들에게도 지옥이었다. 설명하면 이렇다. 지금부터 25년전 나는 우리 집 뜰에 전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이제 그 나무들은 한 15미터 정도의 크기로 자랐고 그 아래쪽의 가지들이 서로 닿을 만큼 되었다. 그런데 좀 떨어져서 유심히 살펴보면 그 나무들이 똑바로 자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들 사이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마치 서로에게서 떨어지기 위해 약간 비스듬히 뻗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건 꼭 각각의 나무가 다른 나무들에 대해 혐오감의 전파를 보내고 있는 형국이다. 나는 묘목업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보았다. 나무는 마음껏 자랄 수 있도록 거의 무한대의 공간을 주위에 확보해 딱 한 그루만 따로 심어놓았을 때만 멋지게 자란다고 그는 분명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렇다, 나무들은 서로를 증오한다. 나무는 좋은 의미에서 개체주의적이고 고독하고 에고이스트다. 이렇게 하여 나는 밀림이 방사하는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숲이야말로 집단 수용소의 강제적인 혼잡 그 자체다. 밀집해 자라는 나무들은 고통스러워하고 있고 서로를 미워한다. 숲 속의 공기는 그 식물적 증오로 가득 차 있다. 산책자들의 폐에 달라 붙어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증오다.
-『예찬』, 미셸 투르니에
맨날 신록예찬 이런거만 보다가 보니 좋아서

문득 잠을 깨보니 방은 캄캄했다. 고개를 들자 베갯머리에 하얀 사각봉투가 한 개 얌전히 놓여 있다. 왠지 철렁했다. 빛날 정도로 순백색의 봉투였다. 단정하게 놓여있다. 손을 뻗어 주우려고하자, 헛되이 방바닥을 긁었다. 아차, 했다. 달그림자였던 것이다. 그 마굴 같은 방 커튼 틈으로 달빛이 기어들어와 내 베개 맡에 정사각형 그림자를 만들었던 것이다.
꼼짝않고 있었다. 나는 달한테 편지를 받았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공포였다.
-『나의 소소한 일상』, 다자이 오사무
...이제 그만 식고자고 공부하자
2009/10/19 02:10 2009/10/19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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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도매상

2009/07/26 21:13


눈물이 에브니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소돔의 아들!"이라고 외치며 가정교사에게 달려들었다. "내 누이의 처녀막을 차지하더니 이젠 내 것 까지 탐내는군요!"

비록 신장이나 주도권 면에서나 에브니저 쪽이 우세했지만 그는 벌링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벌링검은 그보다 더욱 무게가 나갔고 훨씬 더 근육이 발달했으며 격투 기술에 있어서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숙련되어 있었다. 일분도 지나지 않아 그는 에브니저의 얼굴을 침대에 처박고 팔을 비틀어 그의 등 뒤로 단단히 잡았다.

그가 선언했다. "사실 말야, 에벤. 나는 너희들이 열두 살 때부터 너희들을 차지하고 싶었어. 그 정도로 너희들을 사랑했지. 앤드루는 이런 낌새를 채고 분노한 거야. 그리고 나를 해고했지. 하지만 그랬다 하더라도 맹세하건데 자네 누이는 아직 처녀야. 그리고 자네에 관해 말하자면, 자네는 내가 맘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자네를 완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나? 하지만 나는 그렇게 자지 않을 거야. 원하지도 않고. 강간에는 나름의 기쁨이 있지. 하지만 그런 기쁨에는 자네의 우정이나 자네 누이의 사랑만한 가치가 없어."

뭐라구? 헨리 벌링검 야이 막장같은.. 아니 막장인 남자야!!

저는 아무래도 모험담을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맹세코 말하건대 이 책이 헨리 벌링검의 성적 모험담은 아닙니다. 꽤나... 아니.. 상당히... 말초적인 내용 다수 있습니다만 (존나좋군!) 다시 맹세하건대 저는 이게 그냥 식민지 초기 어느 불쌍한 연초도매상이 인디언등과 낯선 문물 사이에서 겪는 모험담인 줄 알고 집어 들었단 말입니다.

실제로 주인공은 에브니저(약칭 에벤)라는 어느 불쌍한 젊은 영혼으로 자신의 사랑을 창녀 조안 토스트에게 바치겠다고 맹세한 후 순결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는 되다만 시인 나부랭이 입니다. 1권에서 이 되다만 시인 나부랭이 녀석이 순결 운운하다가 아버지의 명을 받고 식민지 즉 아메리카에 있는 영지로 떠나는 배를 탈 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러려니 했습니다만 중간에 시종의 도박으로 돈을 다 털린 다음 선원에게 털리고 (여기서 순결을 한 반쯤은 털린 것 같음 ㄱ-;) 해적에게 털리고 다시 그 해적들이 여자들만 타는 배를 털고 다시 식민지에 도착한 다음 친구에게 옷을 다 털린 다음 마차에 아가씨를 태우고 메릴랜드 이곳저곳을 순회하시는 창녀겸 포주 아줌마를 만나거나 (다행이 이 아줌마에게 털리지는 않음) 인디언 왕을 만나서 목숨이 털릴뻔 하거나 하면서 겨우 털리지 않은 것이라고는 목숨과 명목만 남은 순결_-; 인채로 메릴랜드를 돌아다니는 이야기 입니다. 게다가 중간중간에 에브니저와 헨리 벌링검이 찾아다니는 서책의 내용은 이 신대륙 탐험을 하던 두 남자가 인디언들과 ----하고 ----하거나 ----해서 위기를 탈출하는 내용들이 대다수라 책이 총체적으로 그렇고 그런 내용으로 도배가 되어가면서 당혹감을 안겨주지만 왜 그 신문소설이 일부러 야한 것과 같은 문제는 아니고 그냥 유머수준으로 읽으면 되는 정도.. 인것 같습니다. 근데 가끔 내용이 소돔적이라... 무조건 세계명작문학전집을 신뢰하시는 학부모여러분께서는 ㅋㅋㅋㅋ 망하실지도ㅋㅋㅋㅋ 혹자는 누가 세계명작문학전집같은 변태적인것을 생각해 냈는지 모르겠다, 혹은 세계명작문학전집같이 위험한 물건을 애들 읽으라고 그렇게 주냐고 하는데ㅋㅋㅋㅋ 여기서 변태적이라함은 그런 의미가 아니지만 여튼ㅋㅋㅋ 아니 그리고 그게 내용의 다는 아니지만ㅋㅋㅋ 뭐 어쨌든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재밌는 것은 아니고(...) 박진감 있음.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헨리 벌링검은 안나와 에브니저 두 남매(쌍둥이)의 전 가정교사였던 인물로 조연이지만 활약은 주인공 뺨치는.. 아니 그 이상인 친구입니다. 곳곳에 존나 멋있는것 같은 장면이 꽤 나오지만.. 흑.. 불쌍하게도 신이 그만 이 남자에게 인색하게 구셔서.. 좀 사정이 있습니다. 안나와 헨리는 꽤나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작품 말미까지 놀랍게도 안나와 에브니저는 그럭저럭 순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젠장! 난 거기에 집착하고 싶지 않다고!!!! 무슨 상관이야!!! 벌링검도 어떤 의미에서는 순결한게 아닌가 싶지만 이 새낀 이미 정신이 막장임... 당최 이 벌링검이란 남자는 너무 신출귀몰해서 알고보면 벌링검인 인물이 작품내에 서너명은 되는 것 같습니다. 아니.. 혹시 메릴랜드에는 에브니저랑 헨리 벌링검 둘 뿐인건 아닐까... 저는 에브니저의 시종 버틀랜드 마저도 실은 벌링검이 아닐까 의심을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여담이지만 버틀랜드 이새끼는 ㅋㅋㅋㅋㅋ 시종인데 ㅋㅋㅋㅋ 존나 상전 ㅋㅋㅋㅋㅋ)

작품의 스케일은 별로 크진 않고 작품내 등장인물이 알고봤더니 과거의 그사람!!! 전에 그사람!!! 인 전개가 많아서 좀 후반부에가면 맥이 풀리긴 하지만 어쨌든 이 일행이 우여곡절 끝에 목숨을 건지고 에벤은 소중한 재산을 되찾고 그 과정에서 연초도매상이란 길이 남을, 실존하는 작품인 풍자시를 쓰게 됩니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은 원래 있던 시인 연초 도매상이란 시 를 두고 창작과정에 뻥을 튀겨서 만든 소설인 셈입니다. 작품 속에는 에벤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헨리 벌링검이 그토록 찾아 헤매는 자기 조상의 이야기, 포주 아줌마가 들려주는 어느 끝내주는 인디언과의 연애 이야기, 자신을 길러주었던 유모에관한 아버지의 이야기, 총독 아저씨가 들려주는 메릴랜드의 역사 이야기, 선교사가 들려주는 어떤 무식한 선교 이야기 따위가 모두 현재 에벤의 모험과 연결되면서 재미를 더해 줍니다. 영화화 하기는 힘든 소설이라고 하고, 또 개인적으로 제가 소설의 영화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범선이나 해적선이나 식민지 시대의 법정과 아편굴과 인디언 따위를 영화로 만들어본다면 어떨까 하는 공상을 하게했던 소설이기도 합니다.

모험이 꼭 세계를 구하는 모험이어야 할 필요는 없겠지요. 제가 모험담, 그것도 이런 구시대의 모험담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한 인간의 역량, 물리적인 신체의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요 저는 가내수공업적 농경생활소설도 좋아합니다. 쭝궈감성...) 내 손이 닿는 범위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 내 손으로 만들어 내는 일들을 확인할 수 있는 세상에 저는 아무래도 동경을 갖고 있나 봅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읽어서인지 더욱 재미있었던 소설이었습니다.

맨 위의 인용문이 다소 선정적입니다만 사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둘중 어느경우라도 완전히 이해하려고 하지 말게. 그러한 탐구는 헛된 거야. 그리고 지금은 그럴 시간도 없고. 자, 나와 함게 가겠어, 아니면 여기 있겠어?"

에브니저는 얼굴을 찌푸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마침내 말했다. "가겠어요." 그리고 벌링검과 함게 말을 매어둔 곳으로 갔다. 날씨는 사나웠다. 하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남서쪽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불어오는 따뜻하고 물기 먹은 바람이 강에 거품을 일으켰고 소나무들을 채직처럼 구부렸으며 비구름을 별들이 있는 곳가지 몰고 갔다. 두 남자는 멋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벌링검이 말 위에서 몸을 흔들며 무심하게 말했다. "'하늘'이라는 단어는 잊어. 그것은 자네의 눈을 가리거든. 저쪽에는 천상의 둥근 천장 같은 건 없어."

에브니저는 눈을 두세 번 깜박였다. 벌링검의 말을 염두에 두며 그는 생애 처음으로 밤하늘을 보았다. 더이상 별들은 그의 머리 위 보호막 같은 지붕처럼 매달려 있는 검은 반구의의 점들이 아니었다. 그들 사이의 관계를 그는 이제 세 차원에서 바라보았다. 그 가운데 가장 가슴에 와닿는 것은 깊이였다. 별들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의 거리와 너비는 비교적 하찮은 것 처럼 보였다. 지금 그에게 떠오르는 생각은 어떤 것은 비교적 가까이 있고 또 어떤 것들은 비교적 멀리리 있고 다른 것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저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식으로 보니 별자리는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듯 보였다. 천문항법사의 거짓된 가정이 그렇듯 별자리의 특성이 가짜라는 것이 저절로 드러났고 에브니저는 방향을 잃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더이상 상하고저에 대해 생각할 수 없었다. 별들은 그저 저기 밖에 , 그의 위에도 아래에도 있었다. 그리고 바람은 만 쪽에서가 아니라 창고 그 자체, 끝없이 길게 이어진 공간으로부터 세차게 불어오는 것 처럼 느껴졌다.

세 차원은 차라리 삼차원이라고 하는게 좀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는데 삼차원은 또 좀 너무 요즘말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별에 대해서 거리감depth지각을 하기는 쉽지 않지요... 주변에 근거가 될 만한 사물이 없으니까... 위 인용문의 깊이depth란  x축, y축, z축 할 때의 그 z축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으로 그 z축에 대해서 인식하면서 밤하늘을 올려다 본 장면입니다.

뜬금 없는 질문이지만 인간이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는 얼마나 될까요? 저는 저 구절을 읽으면서 졸업시험에 개미가 최대로 얼마나 멀리 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았다는 대학원생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저의 생물책 구석에 써있던 것인데요 다들 그냥 한번 생각해보세요. 개미는 얼마나 멀리 볼 수 있을까요?




답은 대략 1억 5천만 킬로미터,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하자면 인간은 낮에는 1억 5천만 킬로미터 정도를 보고 밤에는 수십광년 정도의 거리를 그냥 맨눈으로 보는 셈입니다. ㅎㅎ 생각보다 인간은 멀리 보네요. 비록 저는 내일의 일도 보지 못하는 몸이지만... 어쨌든 이 생각을 하면서 봤더니 ㅎㅎ 이 장면이 제일 좋았어요.
2009/07/26 21:13 2009/07/2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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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요. 저들이 어디, 악악거리고 꽥꽥대는 데에 무슨 뜻을 두었겠소? 저들은 뱃가죽이 두툼하고 머리는 쪼뼛하며 비단 무늬를 등에 지고 자청 빛을 띠었으며, 현란한 무늬의 비단을 입고 깊은 못의 맑고 깨끗한 곳에 살면서, 혹은 용감한 사내가 외치는 것 같고, 혹은 변사가 합종이다 연횡이다 유세하는 것 같고, 혹은 문인이 옹알옹알 하는 것 같고, 혹은 올곧은 신하가 직언을 하는 것 같이 하기야 하죠. 그래서 그 우는 바가 있어 실천에 옮겨질 듯 하지만, 종당에는 고작 진창이나 파고 구덩이에서 폴짝폴짝 뛰고 있을 따름이라요. 이걸 두고 어찌, 무슨 뜻이 있어 운다고 말할 수 있겠소?"
주인이 사죄하면서 말하였다. "앞의 말은 우스개 말이었소. 내가 어찌 개구리 울음에 대해 알겠소?"

-이옥 산문선, 번역 심경호


개구리의 감정과, 그것을 글로 쓰는 솜씨를 넘어서
휘황한 나의 솜씨로 쓴 글은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글이란 자고로 내면의 감정을 나타내어 주는 것이라는 논리를 많이 접할 수 있는데 현란한 필치로 개구리의 감정을 묘사하더라도, 이 글이 어떤 쓸모가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단지 자신만의 감정을 표출하고 그것만으로 자족하는 것도, 글이 반드시 현실사회에 유효한 내용을 전해야한다는 것도 둘 다 마뜩찮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 말도 글로 쓸 수 밖에 없군요.

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
는 이옥의 산문선으로 캐주얼한 번역이 기절하는 재미난 책입니다.

(전략) 세검정에 오른것도 멋지고, 승가사 문루에 오른것도 멋지고, 문수사 수문에 올라간 것도 멋지고, ...... 시끌시끌하여 멋진 것도 있고, 적막하여 멋진 것도 있다. 어디를 가든 멋지지 않은 것이 없고, 어디를 함께하여도 멋지지 않은 것이 없다. 멋진 것이 이렇게도 많아라!
이선생은 말한다.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이렇게 멋진 것이 없었다면 이렇게 와보지도 않았을 게야."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하고 옆에 다가 느낌표라도 찍어 줘야 될 것 같군요...

아마 고전 산문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박지원이 아닐까 싶은데 박지원의 글이 논리가 쌈빡하면서도 표현이 다소 어려운 점이 있다면 이옥은 화려하면서도 소소롭고도... 어떤 마이너리티를 갖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물론 박지원의 글도 당시기준으로는... 마이너했지만...

지금으로 따지자면 블로그에 끄적거린 글들을 모아서 출판했다. 는 느낌을 줍니다. 옛날 사람들의 문집이란 의외로 별의 별것에대해서 다 썼구만? 이런 느낌을 줍니다. 여기 보면 오이에 대하여- 오이의 종류와 그 요리법 같은 것도 있습니다. ㅎㅎㅎ 글이란것은 그렇게 한없이 힘이 없으면서도 때로는 한없이 오래 가기도 합니다. 무심결에 흘려버리는 수천바이트의 -바이트, 혹은 글자입니다. 바이트로 치환된다는 사실이 슬픕니다-글들 가운데, 하나 맘에 닻을 내려버리는 것을 하나 건지고, 혹은 그런 글을 쓰느라고 나머지 쓰레기를 만들고. 그런 정도의 우연에 기대서 밖에 쓸 수가 없는 그런 정도의 글이라고 밖에는 아직 생각을 못하겠습니다.
2009/02/04 11:21 2009/02/0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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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드라 10주년 기념 양장과 같이 나온 외전 단편
그림자 자국의 삭제분이 알라딘에서 공개되었습니다. 뭔고 해서 가서 봤더니 이건 책이 있어서 대조해서 읽어야 될 것 같은 글이로군요. (보실분은 이쪽으로) 원고에서 삭제돼서 책이 나오기도 하는 구나.

지금 책이 수중에 없어서 좀 그런데
그림자 자국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이루릴이 프로타이스에게
그 계획은 내가 위험하기 때문에 안되겠다. 라고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난  러브라인이라도 생기는 줄 알았음.

그리고 본 사람들이 전부 운차이 오오 운차이 오오 라거나 네리아가 땡잡았다 등의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다 보고 나서도 왜그런지 한참을 모르다가 깨달았습니다.
그 발탄이 그 발탄인가!!!

제 청춘의 한 페이지는 분명 드래곤 라자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내 마법의 가을은 언제일까, 온걸까, 지나갔을까, 올까. 요즘도 생각하곤 합니다. 혹은 음악실에서 책상밑으로 라자를 읽던 때가, 저의 마법의 가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작품의 번외편을 읽는 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작가와 동시대를 향유하고 있는 저희 세대만이 누릴 수 있는 사소한 기쁨이기도 합니다. 작품속의 세계도, 저만큼이나 (저보다도 더 많이) 시간이 지나있었고 그런 세계를, 그렇지만 같은 신화를 공유하는 소설속의 사람들을 보면서 이건은 정말로 번외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단 한 명(과 한 마리라고 해야할까요?)만이 나와 함께 여행했던 시대의 인물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그 인물과 함게 때로는 다른 인물들의 흔적을 쫓으면서 전설에 레전드가 된 평범한 사람들의 흔적을 추억한다는 것은....

제가 나이를 먹었다는 얘기네요. 음.


드래곤 라자에서 거의 하나의 온전한 세계관을 그려낼 수 있었기에 뒤에 오는 퓨쳐워커나 그림자자국은 손쉽게 자기의 이야기를 합니다. 세계관이 온전하고 확고하다면 다소간의 불친절은 매력으로 다가오는 법입니다. 예를 들어 본문에는 '프로타이스하게도' '프로타이스적인' 이라는 언급이 여러차례 나온 후에야 이 반동의 드래곤이 일반명사처럼 쓰인다는 사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네. 여전하네요. 그리고 저는 즐겁습니다.
 
보통 판타지 소설은 세계관을 세우고 등장인물을 그려내고 그리고 나서야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냥 주인공 초코파이는 273버스를 탔다. 고 설명할 수 있는 그냥 소설과는 다르지요.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설의 자기 이야기 이겠지만 때때로 많은 판타지 소설들이 앞의 두가지에서 넘어집니다. 혹은 이 앞의 두가지가 판타지 소설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듯한 작품들도 종종 보입니다. (라고 판타지 소설이라고는 타자의 글밖에 못읽어본 찌질이가 말합니다) 수식이나 인지도에서는 이 바닥에서 그래도 독보적이라고 할 만한 타자의 글은 조금 다른데 앞의 두가지가 서사에 복종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등장 인물의 도구화는 여러차례 거론되어 온 이야기 겠구요 읽다보면 세계관도 결국에는 결말로 달려가는 서술에 봉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서 영원의 숲이 존재하는 이유는- 네 제가 단수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지요. 저로서는 이런 느낌을 더 좋아합니다. 왜 나오는지 모르겠는 신이니 마법 설정이니 하는것만 난무하는 것 보다는 낫지요.

그런 타자의 단품인데 처음 읽고 든 생각만을 말해보자면

안돼 더 이상 이 작가에게 뭘 더 쓰라고 했다간 세계가 남아나질 않겠어

였습니다. 모래성을 열심히 쌓고 나서는 부숴버리는 느낌이라고 하면 너무 실례가 되려나요. 친숙한 주인공들이 전설에 레전드가 된 것을 보는 것은 소소한 즐거움이었지만 그로 인해서 바이서스가 치른 대가는 너무 크군요.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다...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정말로 지구멸망 끗 이런데 까지 가게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림자 자국은 여전히 라자 세계관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존재의 삭제, 종족간의 이해와 몰이해, 그리고 결적으로 인간의 무자비함. 그런것들을 여전히 그림자 자국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조금 많이 흘러있을뿐. 인간은 여전하였습니다. 종족 밖에서 보면 한없이 비이성적인 짓을 자행하지만 종족 내부에서는 도저히 벗어 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시각의 한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가 있는 세계.

병들어 죽거나 비참하게 살아가는 그저그런 어른이 될 그런 미래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 퓨쳐워커 였다면 그림자 자국에서는 그런 미래를 지켜주려는 인물이 하나 나옵니다. 의외로 이분은 퓨쳐워커  미의 계보를 잇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네요. 정말 간단한 논리입니다. 야 트로이에서 아킬레스 죽는대! 하는 말을 보고서도 과연 트로이를 계속 볼 재미를 가질 용자가 나올까요?! (아악! ㅅㅂ 스포당햇어!! 죄송합니다 전 되도록 온건한 스포를 고르려고 노력햇습니다. 이를테면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래, 라든가 절름발이가 범인이래 같은거요)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보고서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도 그럴 것 이라는 그 이후가 보이는데도 발걸음을 뗄 수 있는 사람이란 흔치않을 것 같습니다.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대 라는 단순한 명제 말고요. 소크라테스가 죽는것은 괜찮아요. 사실이니까. 근데 죽는 것이 나라면 그때부터 문제가 되는 거잖아요

좀 내용이 혼란스럽고 시점이 자꾸 바뀌어서 안내하는 그림이 책에는 삽입되어 있습니다. 드래곤, 과 사람과 또 뭐였더라? 하여튼 이 세가지 종류의 그림이 모두 있는 장면도 있고 없는 장면도 있습니다. 이 그림을 참조하면서 읽으면 좀 더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네요. 아웅 나도 한번 더읽어야지. 사실은 한번 더 읽고 리뷰쓰려고 했는데 걍 심심해서 썼음..

그리고 카아아아아아아아알. 그러니까 초상화가 한장도 안 남아 있어서 상상화만 남아 있다 이거지. 이 외형묘사하기 싫어하는 타자같으니라고 그래도 나는 칼이 좋음. 저는 요즘 뒤늦게 애절칼에 발리고 있지 말입니다. 아니 책나온지 10년만에 이게뭐하는 짓?
제리: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난 당신이 마법소녀 변신물을 썼거나 레드북을 썼다고 해도 이해했을텐데ㅎㅎㅎㅎㅎ
나이드: 나이드 사랑해ㅠㅠㅠㅠㅠ사랑한다능 당신은 당신이 거부하는 호칭을 받게될 비운의 마법사 ㅋㅋㅋㅋㅋ 그럴 자격이 있다고 우리모두는 생각합니다 ㅋㅋㅋㅋㅋ

2009/01/23 20:32 2009/01/23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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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울분을 토해내는 게 아니야. 냉정해져. 질척대지 말고. 자기연민 같은 건 버려. 자기 변명도. ... 한 세계를 제 몸에 받아들여 소화시킨 다음 다시 세상에 내놓는 것. 소설을 쓴다는 건 그런 거야. 내 안에 든 걸 그대로 토해내는 건 소설이 아니야. 절대로. 알겠니?

소설집 안의 문창과 여교수가 그렇게 말했다. 그럼 이 소설집 안에 들어있는 소설들이 무언가를 먹고 소화시켜서 나온 거라고? 토해낸 게 아니라? 뭘 먹고 소화하면 이런게 나오지? 속에서 불은 다음 입으로 나온, 끊어진 라면 면발같이. 문장이 토막나 있었고 명확한 서사도 없었다. 거개가 보기 껄끄러워하리라.

늘 그랬다. 천운영의 소설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들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교묘한 세련과 화장을 천박한 욕망과 가식으로 몰아버리는 화법이 껄끄러운 것은 사실이다. 소설집에서 가장 미묘했던 소설은 '백조의 호수' 였다. '나'는 잘나가는 푸드 스타일리스트. 잘나가는 사장과 연애를 할 수도 있고, 쿨하게 헤어질 수도 있고, 연하의 남자애 한테 유혹을 받을 수도 있지. 상당히 대세 칙릿이 될 수도 있는 이 설정의 소설에서 그녀의 고귀한 애완견은 잡종과 흘레 붙고 그녀는 화장실에서 어설프게 피어싱한 여자애와 머리끄댕이를 붙잡고 싸운다. 이런 게, 여자라고, 이런 게, 인간이라고 말하는 소설앞에서 나는 여자로서, 어느쪽에도 나의 정체성을 겹칠 수가 없었다. 문학은('문단은'도 좋겠다) 칙릿의 가벼움을 경계하고 욕망의 섬뜩함을 인정한다. 사람들은 문단의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을 경계하고 칙릿에서 핍진을 찾는다. 나는 여자에 대해 말하는 이 두 가지 모두 껄끄럽다. 여전히, 여자들은 어떤 종류의 욕망에든 사로잡혀 있으며 그 이상 나갈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에


기타 작품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 : 얼마전에 후로게이물을 한 번 써보겠다고 인터뷰를 했는데 이건가? 아님 딴건가? 아내와는 잘 안되던 보잘것 없는 남자가 한 소년을 만나서 운운... 이렇게만 읽으면 너무 실례인 것 같잖아.
그녀의 눈물 사용법 : 누가 누구지?
알리의 줄넘기 : 뭐야 계집애잖아. 주인공이 자신이 계집애인걸 싫어하는건지 작가가 여자가 싫은건지
다른 단편은 별로 할 말이 없다.

요즘 듣고 있는 모 수업 때문에, 나는 소설의 주인공이 울지않아. 우는 것은 약한 것이니까. 라고 모질게 말 할때마다 그만큼 너는 엉엉 울고 싶은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렇게도 않게 눈물을 닦을 수도 있다고, 나는 믿는다. 어설픈 휴머니즘 보다야 독을 차고 가는 것이 낫겠지만. 너무 작위적으로, 위악적으로 굴면 나는 책을 덮고 이건 소설을 위한 소설이고 독백일 뿐이라고 할 것이다. 내가 읽기엔, 조금 그렇다. 이런 책이 나오는 것을 머리로는 알겠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가장 마지막에 작가의 말을 읽었다. 작가는 작가라 말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나는 이 소설집이 토사물이라는 의혹을 거두어야 했다. 그러나 무엇이란 말인가.

p.s. 책뒤에 박민규의 추천사.. 박민규 여전하네...
2008/12/01 19:46 2008/12/01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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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밤, 커트 보네거트
원제는 Mother Night

이 표지를 봐줘. 어떻게 생각해?
조나단님의 블로그에서 진행 되었던 최악의 표지 어워드에서 안타깝게 출판년도의 문제로 경쟁부문에 출품되지는 못하고 언급만 되었지만 처음보는 순간 한국 출판 표지 디자인 계에 밤이 온것이 아닌가 의심케 하는 80년대 과학 교과서삘 나는 디자인이다.

커트 보네거트의 2차 세계대전 시리즈, 라고 부르고 싶은데 제 5도살장과 같이 읽으면 더욱 좋지 않을까.대체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무엇이 누군가를 죽이고 전쟁을 하도록 만드는가? 끔찍한 비극을 나는 직접 겪지 않았고 다만 들어 알고 있을 뿐이다. 한 종족이 다른 종족을 멸절시킨다는 것은 21세기를 사는 나에게는 생소한 경험이고 극악한 범죄이나 반세기 전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 것이다.

극작가 하워드 캠벨 2세는 나치의 선전가이자 미국의 스파이이다. 전쟁후에,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마침내 전범으로써 죽음을 택한다. 책은 무엇이 인간 마음속에 있는지, 왜 누군가 죽는 것에 무감각해지도록 하는지 묻고있다. 하나도 준엄하지 않다. 그점이 좋다.


밤으로의 긴 여로, 유진 오닐

희곡.
이 얘기를 먼저 할까.

유진 오닐은 이 책을 반은 눈물로, 반은 피로 썼으며 (실제 아내에게 바친 헌사에게는 온전히 피로 썼다고 되어 있으며 항상 울면서 작업실에서 나왔다는 아내의 말을 여기에 보탠다) 부디 죽고난 다음에 발표해 줄 것을 부탁했고, 발표후에도 무대에는 올리지 말아 줄 것을 부탁했다.

이것은 그의 아픈 가족사이므로. 쓰는 것은 고통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로 이것을 써냈고 아마, 가족들의 유령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워 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희곡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모두 하나같이 제대로 되어있지않고 서로에 대한 애정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른다. 이것이 작자 유진 오닐의 어린시절과 가족들의 모습을 반영한다는 전기적인 설명이 곁들여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가? 내내 이 사실이 간섭을 해서 아마 제대로 된 독서가 아니었을 것 같지만, 결국 이 얘기를 또 쓰고 만다.


달과 6펜스, 서머셋 몸

왠지 세계 명작 극장화 되어가고 있는것 같긴 한데...
민음사 세계명작 시리즈 좋다.
번역이
전반적으로 상당히 신뢰로워서 되도록이면 이걸 집도록 만든다.
참고로 범우사와 사루비아 총서 등의 번역은 불태워 버리고 싶음
범우사는 *어*문과 교수가 번역한게 많은데 죄다 한쿸말 못하는 교수들 뿐인듯...

술술술술 잘 읽힌다.
작가가 여자를 조낸 싫어하는 게 마구 느껴짐
'기독교의 교리중에 가장 큰 농담은 여자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것이다.'
라고 할 정도면 말 다했음

예술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문학작품인데 으레 화가들에게 자주 있을거라고 생각되는 그런 기벽들, 성격 더러운 점을 전형적으로 잘 형상화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표현 양식에 관한 통찰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 두사람 모두 글로 써서 표현 해야 할 것을 그림으로 그리려고 애쓰고 있는듯 했다.'라는 언급이 인상적.
2008/11/08 17:45 2008/11/0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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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ㅠㅠ
다들 읽자..
아프가니스탄에 관하여 관심이 없더라도 생길 것이다.

만약 이것이 하산과 내가 보곤 했던 인도 영화라면, 이 부분에서 내가 맨발로 뛰쳐나가야 했다. 빗물을 튀기며 차를 쫓아 달려가면서 멈추라고 고함을 질러야 했다. 하산을 뒷좌석에서 끌어낸 다음 눈물과 빗물이 뒤범벅된 얼굴로 너무너무 미안하다고 말해야 했다. 그러나 이것은 인도영화가 아니었다. 나는 미안했다. 그러나 울지도 않았고 차를 쫓아가지도 않았다.

그들은 말한다고 한다. '삶은 계속된다'고. 내가 사는 삶은 2시간 짜리 영화가 아니라서 하지못한 사과를 안고 계속된다. 이 글의 주인공은 끝내 자신의 비겁함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아프가니스탄 땅의 비극과 맞물려서 좀 더 비극적인 사건이 되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흘러간다.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도 속죄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살아있다면 아마도 삶이 계속될 것이다. 책을 덮고 조금 울었다.

소프트웨어, 누가 이렇게 개떡같이 만든거야
Why software susks

기절 ㅇ<-<
표지 봐라
재미있습니다.

왜 어떤 사이트에서는 아이디 대신에 이상한 회원 번호를 쓰기를 강요할까요? (ex 철도공사 홈페이지)
왜 어떤 사이트에서는 숫자와 문자를 섞어서 비밀번호 만들기를 강요하고 어떤 사이트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될까요?
왜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구석에는 춤추는 클립이나 멍청한 멍멍이가 돌아다녔던 것일까요? (버전 97기준)
왜 어떤 사이트에서는 원하는 정보를 보거나 설정을 얻게 될때까지 무한한 클릭을 해야할까요?
왜 윈도우는 내가 삭제하려고 삭제버튼을 눌렀는데 정말 삭제할거냐고 다시 물어보는 걸까요? (저는 그래서shift + del이 너무 습관이 되어서 진짜로 곤란했던 적도 있습니다.)

내가 바보라서 그런가?

개발자가 바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개발보다는 개발자의 세계에 일말의 환상의 품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geek에 대한 판타지인지 geek한 판타지인지...) 그냥 사용자의 입장에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통쾌하거든요.
때때로 신버전은 버그를 수정하는 것 뿐만아니라 점점더 점점더 쓸데 없는 기능을 갖다 붙이곤 합니다. 대체 왜? 그러면 더 좋아질거라고 생각하는건가? 개발자 : 예 그렇습니다.  사용자 : 그게 뭥미?
대개의 사용자는 컴퓨터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 공부를 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데 관심이 없지요... 개발의 역할은 그런 사람도 원하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종종 이런것이 간과되곤 합니다.

낄낄거리면서 읽었네염


덧) 텍스트큐브가 구글에 인수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는데 알고보니 가입형서비스(로 준비중이었던) 텍스트큐브가 인수된 것이고 설치형은 별로 상관이 없더군요... 그래도 뭐랄까 구글은 태평양 건너편에 있는 존재로 여겼는데 갑자기 우리 옆집 형이 빌 게이츠하고 아는 사이래, 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합니다. 그 계열에 티스토리, 태터, 텍스트큐브, 가입형 텍스트큐브에, 메타사이트랑, 개발포럼 등등 뭐 이것저것 많아져서 구별도 힘드네요. 태터는 벤처회사(로 알고 있었는데)가 뭐가 그리 많은지... 솔직히 저도 꽤 관심을 가지고 오래 사용한 편에 속하지만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능...그냥 솔직히 명칭도 설치형은 태터로 쭉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텍스트큐브(가입형)이라거나 텍스트큐브(구 태터툴즈)이렇게 설명하는 것도 힘든일 아니겠습니까.
예전에 티스토리때는 해당 서비스만을 개발하는 형태였는데 이번 것은 회사 전체를 인수한거라고 하더군요. 저의 상식으로 이해하자면 개발은 태터에서하고 퍼블리싱은 다음에서 하는 형태였던듯. 뭐 어찌되었건 구글의 토양에서 좋은 서비스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2008/09/13 08:30 2008/09/1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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