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초록색 조끼를 입은 세븐일레븐의 사장이 내게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엉겁결에 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그의 손에 들린 리더기가 잽싸게 컵라면의 바코드를 읽어낸다.
"여기사세요?"
구리색 피부에 살집이 좋다. 나는 컵라면 값 650원과 함께 네, 라는 말을 지불하며 세븐일레븐을 황급히 나온다. 그런데 그후로 세븐일레븐에 갈 때마다 그 남자는 내가 물건을 사는 족족 말을 걸기 시작한다.
'학생이에요?"
"네"
3학년?"
"네"
"혼자 살아요?"
"네"
"여기 K대학?"
"아니오."
"그럼 어느학교 다녀요?"
나는 대충 학교 이름을 얼버무린다. 그러곤 다음 질문이 설마 '전공이 뭐예요?'는 아니겠지 생각한다. 그가 묻는다.
"전공이 뭐예요?"

(중략)

내가 세븐일레븐 로고가 새겨진 반투명 비닐봉지를 들고 황급히 나가려 했을 때, 그는 내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한 여고생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언니 잘 있어요? 그 시립대 다닌다는..."
나는 그후로 세븐일레븐에 가지 않는다.

김애란, 나는 편의점에 간다 中


시험기간 동안 도서관에서 서식을 좀 했었는지 도서관 편의점 알바가 어느날 "아침에 지하철 타고 학교 오셨죠?"하고 묻는다. "네" "○○쪽에 사시나봐요." "네"

그후로 편의점에 안 가고 있다(...) 왠지 쪽팔려서 ㅇ<-<

소설이 꼭 멀리있는 것 만은 아니다. 김애란의 '나는 편의점에 간다'는 내용이나 가벼움이야 뭐 어쨌건 정확하게 대도시민의 한 단면을 포착하고 있는 소설이다. 비유하자면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정도로, 굉장히 여기저기 인용되기 좋은 소설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편의점은, 그런것을 묻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익명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곳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생활의 터전이고 기존의 한국 사회의 논리, -꼭 어디서 뭘하고 가족은 몇인지를 물어보는-가 여전히 잔존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화자는 저 중략된 부분에, '그럼 당신은 그런 정보를 알고 난 후 나를 '알았다'고 하겠지.'라고 독백한다. 그런 화자에게 묻고 싶다. 뭘 알면 내가 당신을 알았다고 할 수 있는가고.

내가 편의점에 갔던 그 사이, 나는 이별을 했고, 찾아갔고, 내가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 거대한 관대가 하도 낯설어 나는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서성이고 있다.

다시 한번 묻고 싶다. 그러면 당신은 내가 그것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가고. 혹은 그것이야말로 가장 알리고 싶지 않은 부분이 아닌가 하고. 아마 내가 김애란을 가볍게 여기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나한테는 그렇다. 여담이지만 난 이 구절을 '그동안 나는 죽을 만큼 아팠다'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책에 보니까 '내가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라고 되어 있었다. 책을 아무리 찾아봐도 그 구절이 없어서 다른데서 본건가 하고 의심을 하고 있던 찰나에 내가 봤던 잡지 게재분에는 '죽을 만큼 아팠다'라고 되어있는 것을 찾았따_-;;뭐야 이렇게 막 고쳐도 돼?!
2009/06/23 13:21 2009/06/23 13:21


trackback(0) | comments(4)


<<    : 1 :     >>

'김애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6/23 나는 편의점에 안 간다 (4)
  2. 2008/08/28 장송, 침이 고인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