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뭐랄까, 박민규가, 연애 소설이라니. 다들 남자고 여자고 연애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라고 하면 뭐, 못할 것도 없겠지만 편견이란 건 무서워서 금성과 화성에서 온 외계인이 냉장고에 들어앉아 카스테라를 먹는 내용 아닌가 잠시 의심했다. 그런데 빼도 박도 못 하게 제일 첫머리에 아내에게 헌사까지 박혀있는,

연애

소설이다. 눈도 오고 엘피판도 있고 비틀즈도 있고, 나도 있고 그녀도 있다. 연애를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아니, 과하다.

소설 첫부분을 읽었을 때 : 박민규가 연애소설이라니... (차별하는건 아니지만)
소설을 중간쯤 까지 읽었을 때 : 그래! 사랑이야! 사랑을 하는거야 크허엏어헝허엏엏
소설을 끝까지 읽었을 때 : 아 시발 꿈(미리니름이 될 수 있어서 가려놓습니다. 드래그 하면 보입니다.)

여태까지 박민규의 주적(...)은 자본주의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별로 변함이 없는데 어떻습니까? 당신의 연애란? 첫눈입니까? 아니면 자본주의입니까?  자본주의 세계에서 첫눈처럼 연애하기를 바라거나 혹은 또 첫눈같은 연애에 자본주의의 룰을 들이대거나 혹은 그걸 욕하거나 첫눈을 밟으며 티오피든 스타벅스 커피든 들고 걷든 뭐 대강 그 어느 사이 쯤에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조금 옛날로 돌아가서 조금 편하게 첫눈을 소환하고 있다. 가진 것은 신수 훤한 얼굴 하나인 남자 주인공과 너무 못생겨서 다들 헉 한다는 여자 주인공이 둘이서 연애를 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이런 구도. 끊임 없는 열등감, 가진것 없음, 그 다음에 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조금이라도 공감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좋아한다. 그렇게까지 못생긴 이라는 설정이 다소 작위적이고 와닿지 않더라도. 그래 그렇게 연애를 하면서 결국엔 골목길 사이로 HOF아니고 HOPE인 맥줏집 간판이 깜빡거리는 세계를 차분히 지켜본 내용이다. 연애를 하더라도 결국엔 나나, 세상을 더 많이 보게 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세상은 사실 21세기와 별로 다르지 않은 세상이고.

그런데 그 쩜쩜쩜이 너무 무겁다. 소설은 제대로 된 문장으로 이루어 져 있다기 보다는 끊임없이... 망설이고... 말을 끌고... 부연한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싶을 정도로. 인터넷 화면에서는 픽셀 하나일지 모르지만 활자화된 종위 위해서 그 쩜이 너무 크고 무겁다. 내용 자체는 대학~사회초년생의 감수성 예민한 푸념정도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쩜쩜쩜이 더 그렇게 만든다.

결말이 하여간 좀 망했다. 하지만 나라도 답이 없다. 순간 삼류 드라마로 책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예전 드라마 시티 처럼... 어딘가 오그라드는... 박민규는 좋아하는데 객관적으로 이 책을 변호하기는 힘들다. 바꿔 말해서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엉 그게 좀 싶긴한데 어쨌든 난 박민규가 좋다는 거다. 이번에 이상문학상 탔다. 다들 많이 읽어 달라.


세계의 끝 여자 친구

하여간 제목은 엄청 간지나... 단편집이다. 여담인데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란 구절이 꽤 마음에 들었던 듯. 전에 이 제목의 장편을 썼는데도 같은 제목의 단편이 이 단편집에 실려있다. 글쎄 주된 테마는 이해...였던 것 같다. 이 책은 끊임없이 이해와 오해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이 둘 사이에는 삼해 정도의 차이가 있고, 점하나 정도의 차이가 있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여성화자가 다소 늘어났다고 느껴졌다. 전작들에서 느닷없이 이별을 통고했던 그녀들의 목소리를 좀 더 들을 수 있었다.
돌아가는 길은 너무나 멀고도 힘든데 정작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정말 거기가 맞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곧 나는 내가 기타라고 생각했던 악기는 기타가 아니라 우드라는 중동 지방의 민속악기라는 사실을, 눈앞이 흐려진 것은 느닷없는 눈물 때문만이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떨어지기 시작한 겨울비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제 더이상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한꺼번에 깨달았다. 나는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이혼하자고 말했다.

  내 애기를, 부주의하게 백합을 버린 일 때문에 이혼하자는 말로 들은 남편은 그때만큼 당황한 목소리로 자신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며, 나없이는 더이상 살아갈 의미를 알 수 없으며, 내가 원하는 대로 좀더 사려깊은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나는 말했다. 이혼하자고. 이혼해달라고. 제발 이혼해달라고. 남편은 당황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자신은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나 없이는 더이상 살아갈 의미를 알 수 없다고, 내가 원하는 대로 좀더 사려깊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시는 백합을 버리지 않겠다고.

시를 다 읽고 나더니 그녀는 내게 노스트라다무스의 그 시 때문에 자신은 나와 결혼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건 사실상 지구의 해수면 상승 때문에 우리가 헤어질 수 박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였다. 그게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때문이건 투발루를 서서히 잠식해들어가는 해수면 상승 때문이건 그런 초자연적인 이유때문에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고받은 남자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란 당혹감, 비참함, 분노, 적대감 등일 것이다

종종 여자친구에게 느닷없이 이별을 통보 받은 창작 계통에 종사하는 남자친구 이야기가 몇 번 겹쳐서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층위가 좀 다양해 졌다. 그래 솔직히 내가 소설가도 아니고, 남자친구도 아닌 남편인 다음에야. 이혼하자는 말에 '내가 더 잘할게' 외에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참고로 소설가는 끊임 없이 이해하고 소통려고 드는 족속이다. 그리고 더 여담인데, 예전에 수업에서 읽었던 프린트물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이면지 활용하다가 다시 읽었다. 어쩐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고서적 이면을 뒤지는 기분이었는데 하여간 거기서 소설을 쓸 수록 그는 소통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갔다. 에 밑줄이 쳐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자가 뿔났다 코너를 보는 것도 같은데. '내가 더 잘할게'라고 말하는 놈은 그럼 나쁜 놈이냐하면 꼭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선생님. 그 학생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선생님을 사랑했을 거예요. 선생님과 함게 보낸 시간이 행복했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태어나서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난 것만은 행운이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사랑은 어떤 순간에도 미워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선생님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았을 테니 까요.

함부로 사랑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 일인지. 책에 나온 가장 거대한 오해의 이 순간은 어찌되었건 위로의 맥락에서 이루어 지고 있다. 이부분이 문제인 것이다. 대개의 경우 우리는 이해를 빙자한 오해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선언이 중2의 선언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우리는 오해의 편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의외로 소설들은 거기에서 절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소설을 쓰지 않았을 테니까. 어떻게 해서 여기에 왔는가. 혹은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세상의 끝에서는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책이 말한다. 그 세상의 끝이라는 것이 라틴 아메리카가 아니라 호수 공원 건너편이니까. 나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80년 동안 노력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세상의 끝에서, 전해진 편지를 받아든 장면에서 나는 잠시 고민했다. 과연 이것을 이루어졌다고 말해야 하는지. 언젠가, 어디에선가는 반드시 하고자 했던 말이 전해진다는 선언은 맞는 말일 수는 있지만 가치가 없는 말일 수도 있다. 그냥 시공간 좌표를 넓게 잡으면 당연히 확률이 올라가는 기만을 부린 것은 아닌가 하고. 당연히 신뢰구간을 넓게 잡으면 신뢰도는 올라간다ㄱ-;; 대한민국 안에 범인이 있다는 말은 맞는 말일 수는 있지만 서울시 무슨구 무슨동 무슨빌라에 범인이 있다는 틀린 정보보다 의미 없는 말이다. 그런 의미해서 전해진다, 혹은 이해한다는 말의 의미가 요즘 어렵다. 어릴 때는 가치관이나 기만같은, 좀 더 어려운 단어를 어려워했던 것 같은데.

특히 요즘들어 이 단어를 어려워 하게 된 계기는 대통령이 '참 좋은 정책인데 국민 여러분이 이해만 해주면...'운운 했던 일과 <눈길>에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나'의 마음이 어떠 할지 생각하면서 어머니를 이해하는 내용으로 글을 써보자.'라고 했던 국어교과서의 문제이다. 첫번째의 이해는 정책이 애초에 잘못 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 좀 이상하다. 이해는 그런 데 쓰는 말이 아닌 것 같다. 납득 내지는 동의(....)가 화자가 의도한 말인것 같다. 그렇지만 이해하더라도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두번째 이해는 좀 미묘한데... 하여간 뭔가 아닌 것 같다. '배려'라는 말도 간혹 그런 경우가 있는데 상호동등한 입장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여유있는 사람이 부족한 사람에게 한다는 뉘앙스가 좀 있어서 저 이해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해는 양해와도 용인과도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이 말은 성립하니까 이해는 또 사랑과도 다르다. 그런데 정확히 뭐가 다른 것인지 잘 모르겠다. [-도의적] [+정의적] 이렇게 정리를 해봄직도 하건마는...

기타 읽은 책
문학터치 2.0
책은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 인터뷰&관찰일기(...) 같은 글인데 작가가 쓴 글 보다도 작가에 대한 글이... 사실 더 재미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책에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가 왜 기린인지에 대한 대답도 들을 수 있었고 어둠과 고독이 따뜻하게 느껴졌다는 김연수 파트에선 킁킁 범프 스멜-寂しさを知った時は 温もりに気付けるんだ-을 느끼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다. 근데 말이지...
2.0에 사춘기체에... 설마설마 하면서 봤는데 앞표지에 발칙한 어쩌고 수사가 아... 망했어요.
요새들어 잘나가는 삼종세트 (2.0+사춘기체+이시대의 발칙한~)을 한데 뭉쳐 놓으니 아... 참 안타까웠다. 뭔가 젊으려고 잘 나가려고 하는데 너무 과해서 부끄러웠다.
2010/02/23 22:08 2010/02/23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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